다음 시계는 뭘 차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갑자기 돈이 급하게 되거나, 혹은 기변증이 생겨 다른 시계를 경험해보고 싶다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손목에 올려진 시계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어 당장 사고싶은 마음이 들거나 하는 경우들이다.
모든 물건이 그렇겠지만, 시계를 고르는 일은 참 기분이 좋은 일이다. 이것 저것 알아보며 인터넷 서핑을 할 때에 행복하고, 결제를 눌러 배송중이 뜨면 행복이 최고조에 달하다가, 언박싱을 하고 시계를 손목에 두르는 순간부터는 조금씩 만족감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보면 시계를 사고 팔고 하는 일이 잦아지고, 필연적으로 돈을 잃게 된다. 그래서 몇 번 시계질을 반복하다보면 '다음 시계는 뭘 차볼까' 하는 고민이, 제법 심오해지고 나름의 철학을 갖추게 된다.
이번 시계를 지를 때에는 예산은 제한되어 있고 좋은 시계는 갖고싶었던 터라 더 많이 갈팡질팡했다. 너무 오래 갈팡질팡하다보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그냥 애플워치나 계속 차고 다닐까, 무리해서라도 좋은 시계를 사볼까, 나는 왜이렇게 돈이 없는 것일까, 대체 시계가 뭐길래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할까, 시계의 본질이 무엇일까 하는 심오한 고민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일단 시계를 고른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정장 및 캐주얼에 잘 어울릴 것(벌써 어려움)
- 백만원을 넘지 않을 것(예산이 백만원이 안됐기 때문에...)
- 왠만하면 10ATM의 방수 성능
- 환경 친화적일 것 (가급적이면 기계식 시계, 쿼츠일 경우 배터리 교환 주기가 길 것)
- 날짜 기능이 있을 것
- 작고 가벼울 것
- GMT(듀얼 타임) 기능이 있으면 땡큐
어려운 기준이기는 하나, 만족할 수 있는 시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력한 후보군으로 해밀턴의 카키 필드 오토매틱(Hamilton Khaki Field Automatic) 혹은 카키 Navy GMT(현재 단종되었으나 73만원에 구매 가능), 미도의 오션스타 트리뷰트(Mido Ocean star Tribute), 세이코의 SKX013, 티쏘의 Gents 등의 시계가 물망에 올랐고, 장고 끝에 결국 고른 시계는 카시오였다.
결국 선택한 시계는 카시오의 B650WB-1B 라는 모델로, 그 유명한 손석희 시계의 수많은 후속판중의 하나다. 손석희 시계와의 차이점은, 사이즈가 약간 커지고(38mm -> 43mm), 블랙 컬러에, 개선된 배터리 수명(3년 -> 7년) 정도로 볼 수 있다.
미도의 오션스타 트리뷰트 한정판까지 넘봤다가 오만원도 안되는 카시오 전자시계로 급선회한 이유는, '시계가 대체 뭐길래' 라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정립했기 때문이었다.
- 시계는 애초에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다.
- 그런데 어차피 시간은 핸드폰을 보는 것이 정확하다.
- 그렇다면 이제 시계는 그 기능성보다는 심미성이 본질적인 가치라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그냥 내 눈에 예쁜 시계를 사면 된다.
정도가, 시계의 본질에 대한 나의 정리였다. 이렇게 정리를 마치니 위의 엄격한 기준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졌고, 나는 그냥 내 눈에 예쁜 시계를 사기로 했다. 그러다 우연히 유투브에서 얻어걸린 시계가 바로 카시오의 B650WB-1B 였다. 처음에는 그냥 손석희 시계가 정장에도 잘 어울리고 캐주얼에도 편하게 차고다닐 수 있을 것 같아 주문하려 했는데, 너무 흔하다는 것이 걸림돌이 되어 옳다쿠나 싶었다.
2주처럼 느껴지던 2일의 배송기간 끝에 손목 위에 올려 본 이 카시오 시계는, 딱 쇼핑몰의 상세페이지 사진과 똑같은 모습이었고, 생각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았다. 듀얼타임이 지원되지 않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적당한 사이즈에 얇고 가벼워 착용감도 좋고, 배터리 수명도 7년이라 전지를 많이 교체할 필요가 없어 친환경적이라 좋았다.
내 주변에 차는 사람도 없어 더 좋았고,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오랜 고민과 생각 끝에 결정한 모델이라 왠지 그간 했던 사유의 전리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다. 개똥같은 소리같을 수도 있지만, 쉽게 이야기하면 그냥, 나같은 시계라는 생각이다. 이거는 팔아봐야 얼마 되지도 않으니, 아마 박살나지 않는 한 두고두고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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