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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의 서랍

롤렉스 6694 - 빈티지 롤렉스의 매력

by cheolsoo2 2019.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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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롤렉스는 6694였다. 2012년이었던 것 같은데, 취직한 지 6개월 만에 돈을 모아 종로 세운스퀘어에서 그 큰 매장을 17바퀴정도 돌아보고 장고 끝에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120만원 정도를 줬고, 지금은 280만원 쯤 하는 걸 보니, 역시 나는 투자의 귀재인 것 같다. 아, 물론 나는 한 1년 정도 차고 팔았기 때문에 5만원 밖에 못 건졌다. 브레이슬릿 포함 풀셋을... 이런 멍청이...

40년이 지난 시계들인데 몸값이 아주 대단들 하셔 아주

 

롤렉스 6694는 현행 라인의 오이스터 케이스의 형태를 띤 마지막 수동 시계로, 1960년대에 출시되어 1980년대 초반까지 생산되었다. 무브먼트는 Cal.1225로, 베이스 무브먼트인 Cal.1220에 날짜 표기 기능을 추가한 무브먼트이다. 17석의 루비에 진동수는 21600 vph(3Hz)로, 요즘의 스탠다드(28800 vph)보다는 다소 작은 진동수를 보여준다. 실제로 초침이 흐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요즘 모델들보다 다소 느긋해 보이기도 한다. Cal.1225 무브먼트는 Cal.1210의 업그레이드 버전인데, Cal.1210은 심지어 진동수가 더 낮다. 

 

차라리 요즘 나오는 무브먼트들보다 예쁜 것 같기도 하다. 

케이스는 34mm에 러그사이즈는 19mm로 다소 변태적이기는 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 중 하나는 착용감이었는데, 자동감기를 위한 파트가 없다 보니 요즘같이 뒷백이 볼록 튀어나온 버블백 스타일이 아닌, 거의 민자형의 평평한 뒷백이어서 손목에 달라붙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스크류 용두를 사용하고 있어서 왠지 방수가 잘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으나, 30년이 지난 시계이기 때문에 방수는 거의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실제로 나도 이 시계를 차고 등산을 나갔다가 비를 잠깐 맞고 집에 와 보니 다이얼에 습기가 차 있어서 눈에서도 습기가 찼던 기억이 난다. 

2011년에는 아이폰 카메라 성능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이 시계를 살 이유는 충분히 많았다. 몇 개만 나열하자면 - 

  1. 롤렉스의 마지막 수동 무브먼트
  2. 이쁘다. 지금 봐도 예쁨
  3. 다이얼에 롤렉스라고 써있음
  4. 크로노미터 인증은 아니지만 시간도 매우 정확(내 경우 하루에+3초 정도의 오차였으니, 당시 가지고 있던 현행 티쏘 시계보다 더 정확한 성능을 보여줬다. 역시 클래스는...)

이정도 컨디션이면 300만원을 주고서라도 산다 진짜 *출처: Chrono24

다른걸 다 떠나서, 그냥 예뻤다. 은판의 은은한 썬레이 다이얼을 보고 있으면 자꾸 감탄사가 나오며 이게 30년 전의 시계가 맞나 하는 생각에 놀라우면서도 참 행복했었다. 심지어 회사에서 시계를 원없이 보고 싶에서 화장실에 숨어 시계를 풀고 요리조리 구석구석을 감상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긴 한데, 생각해 보시라.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코묻은 돈을 모아 발품을 팔아가며 구매한 첫 롤렉스 시계이니, 감개가 무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시계보관함에 잠자고 있는 6694를 보면 그 때가 떠오르곤 한다. 라고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바보같게도, 이 시계도 변덕스런 내 손목을 6개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잘 차고 다니다가 방출을 결심한 계기는 앞서 언급한 방수 성능이었다. 사실 그 정도의 방수 성능은 빈티지롤렉스를 차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었으나, 당시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아 역시 빈티지는 관리가 어렵구나. 좀 더 안심할 수 있는 시계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또 수동으로 밥을 줄 때마다 스크류 용두를 풀어야 하는데, 왠지 풀고 잠글 때 나사산이 깎여나가는 것 같은 이상한 찝찝함이 있었던 것도 한 몫 했다. 당시 나에게 그러한 메인터넌스 포인트들은 시계에 대한 집착을 만들었고, 더 이상 신경쓰기가 싫었다. 

지금은 또 누군가의 손목을 지켜주고 있겠지 뭐. 이쯤 되면 롤렉스는 거의 공공재 아닌가? 에어비엔비 같은...

 

지금 다시 롤렉스 6694를 사라고 한다면, 살까? 내 대답은 '아니오'다. 한 번 경험해 본 까닭도 있지만, 이 시계를 이후로 빈티지에는 손을 대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장롱 속에 묵혀둔, 출처를 알 수 있는 시계라면 모르겠지만 6694같이 오래된 시계는 아마 십수번도 넘게 주인을 바꿨을 것이다. 그 많은 여정을 보내며, 시계의 속살이 어떻게 곪았을 지 모를 일이다. 시계는 어찌되었건 모시는 대상이 되면 안된다. 막 굴려도 되고, 막 굴려도 시간을 잘 지키는 시계가 최고다.

 

2019년 10월 14일 발행 by Cheolso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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