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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의 옷장

리바이스 501 / 미니멀리스트의 옷장

by Kim Editor 2019.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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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의 옷장 / 리바이스 501 Jeans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옷장에 청바지가 한 벌도 없었다. 사실, 옷 입는 것에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코디의 기준은 냄새가 나느냐, 안나느냐였다. 새내기 새로배움터에서 나만 빼고 대부분 청바지를 입은 것을 보고 저 바지가 하나쯤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당시만 해도 엉덩이 포켓의 갈매기 모양과 조그만 붉은 탭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제대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중 하나는 리바이스 청바지를 사는 것이었다. 마침 직수입 리바이스, 빈티지 리바이스가 인기있었던 시기라 오만원 내외로 저렴한 리바이스를 살 수 있었다. 학원강사 알바를 하며 지갑도 두둑해 졌겠다,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보던 나는 멘붕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혼란하다 혼란해...

 

501, 511, 505 등의 버라이어티한 숫자도 그랬고, 다른 바지들엔 하나만 있었던 사이즈 표기가 이 바지는 어찌된 일인지 두 개나 있었다. 매장에서 입어보고 사면 좋았겠지만 매장의 바지들은 비쌌고, Pre Shrinked, Unshrinked 등의 표기는 서울 촌놈을 더욱 겁먹게 만들었다. 결국 제일 익숙했던 숫자를 골라 살 수 밖에 없었다. 501 모델에 32-32 사이즈였다. 

처음 501을 받았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바지 안쪽에 주머니 부분에는 This is a Pair of Jeans 라는 문구와 함께 브랜드 역사와 취급방법 등이 수려하게 프린트되어 있었고-수려한 프린트라는 표현이 어불성설이지만, 이해해 달라. 오리지널의 오리지널이지 않은가- 지퍼가 아닌 다섯 개의 단추는 뭔가 리바이스의 유산을 입음으로써 다른이들과 차별화되는, 은밀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만 삼천원 짜리 리바이스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옷장엔 벌써 대여섯벌의 리바이스 청바지가 걸려있었다. 색깔별로, 핏별로, 워싱별로 나란히 놓인 리바이스를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퍼온 사진이긴 한데 대충 비슷한 분위기였음

 

리바이스를 차버린 건, 교양 수업을 같이 듣던 경영학과 형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귀티나는 외모에 당시 흔하지 않던 돌체앤가바나의 티셔츠를 즐겨 입었으며, 등하교도 무려 외제차로 하는 형이었다. 여자애들 사이에 인기도 많아서 같이 수업을 듣고 나와 헤어져 과방에 앉아 있으면 그의 정체를 묻는 여학우들 때문에 은근 질투가 나면서도 부러웠다. 관심을 빼앗긴 덕에 은근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솔직히 내가 봐도 멋있긴 했다. 특히 청바지의 워싱과 핏이 아주 훌륭했는데,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 덕에 그 바지가 디젤이라는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지금 보면 누가 입나 싶은 부츠컷인데 당시엔 이게 왜이리 곱던지...

 

'웃기는 이름이 다 있네... 디젤이라니.' 하며 집으로 와 인터넷 검색을 해 보고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던 것이 기억난다. 형이 입었던 모델은 디젤의 자탄(ZATHAN)이라는 모델이었고, 가격이 30만원이 훌쩍 넘었다. 당시 나에게 가장 비싼 청바지는 '백화점에서 파는 리바이스' 정도였기 때문에 이런 세계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당시 밀고있던 BE STUPID 캠페인 / 청바지는 리바이스, 게스, 켈빈클라인밖에 모르던 나에겐 거의 한줄기 계몽의 빛이자 소금이었다.

 

그 날 이후 리바이스에 대한 나의 사랑은 완전히 식어버렸다. 뒷포켓의 갈매기가 괜히 후져보였고, 501의 어정쩡한 핏이 괜히 사람을 더 바보같아보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마침 유니클로에서 S001 이라는 청바지가 굉장한 핏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가격마저 착해(39,000원) '그래, 청바지에 오만원 이상 쓰는건 돈지랄이야...' 하며 S001만 사계절 내내 입고 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졸업, 후다닥 취업하여 청바지는 주말에만 입는 옷으로, 주말도 하루는 추리닝 바지에, 이내 한 달에 한 번쯤 입는 옷이 되어 옷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애증의 갈매기와 레드탭

청바지를 다시 떠올린 것은, 필요할 때 몸에 맞는 청바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부터였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부터 물건을 하나 들일 때에는 최대한 의미가 있는 제품으로 고르고 싶었기 때문에 신중하고자 했고, 예산을 떠나 질 좋은 녀석을 들이고 싶었다. 거의 1년여간의 고민 끝에 선택한 바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리바이스 501이었다. 

 

미국 출장길에 사온 리바이스 501... 이정도면 애증이지

사실 그동안 청바지를 아예 안입었던 것은 아니었다. 디젤 이후 프리미엄 청바지에 빠져 디스퀘어드, A.P.C, 누디진 등 고품질의 청바지를 사서 입어보기도 했는데, 핏이 타이트해서인지 하나같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유니클로를 입자니 스스로 지겨운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돌고 돌아 결국 리바이스를 선택했다. 어쩌면 마음 한 켠에 나만의 워싱을 내고 싶은 로망이 있었는지도, 아니면 천진난만했던 대학생활이 그리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무려 미국에서 사온 이상, 연청색으로 물이 빠질 때까지 열심히 입어 줄 예정이다. 

2019년 6월 9일 발행 by Cheolso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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