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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의 서랍

남자손목시계 추천 : 내가 파네라이를 선택한 이유

by cheolsoo2 2019.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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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역시 야광이지

1. 시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라 한다면 책을 한 세 권 쯤은 쓸 수 있다. 그 세 권의 마지막 장엔 그 동안 날린 돈을 생각하며 멸치 안주에 소주 나발을 불고 있는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겠지. 무튼, 대학생 때부터 시계질에 빠져서 참 많은 손목시계를 경험해 봤고, 지금은 어느 정도 기준과 취향을 가지고 시계에 대해 이야기할 깜냥은 되는 것 같다. 

2. 시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계는 로렉스를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로렉스를 인정하는 것으로 끝난다' 라는 되도 않는 말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엔 허 참 거 무슨 썰렁한 소리를 다 한담. 노친네 시계를 누가 찬다고... 하고 넘어갔으나 어느 순간 데이져스트를 차고 '캬 역시 시계는 로렉스...' 하며 온갖 사진을 찍고 추운 날에도 굳이 소매를 걷고 다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봐도 이쁘긴 하네... 내가 이걸 왜 팔았더라...

3. 지금은 로렉스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저 말 자체는 이제 동감한다. 누군가 나에게 시계를 추천해 달라고 물으면, 나는 "시계 좋아해? 좋은 손목시계 하나쯤 가지고 싶어? 무조건 한 방에 로렉스로 가. 그게 돈 아끼는 길이야." 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나의 시계질은 다른 이들처럼 세이코, 티쏘, 해밀턴, 론진으로 시작해서 태그호이어, 오메가, 브라이틀링, 까르띠에를 거쳐 결국 로렉스로 귀결되었다. 그 과정에서 시계를 사고 팔며 손해본 금액을 생각하면 당시 시세로 서브마리너 새상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개새끼야!!! 팔지 마 임마!!! 야!!!!!!!!!!!!!!!!!!!!!!! 

 

4. 지금 내게 남아있는 시계는 파네라이의 루미노르 111 모델(Panerai Luminor PAM00111)이다. 2015년에 단종되어 지금은 구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프리미엄이 붙지도 않는, 그런 걸 보면 딱히 수요가 많지 않은데 또 내가 사려고 찾아보면 잘 보이지 않는 그런 모델이다. 시계계의 블랙베리랄까.

 

저, 저요? 잠시만요 업데이트 확인 좀 하고...

 

5. 파네라이를 선택한 이유는 좀 복합적이다. 전에도 한 번 사서 차다가 방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 들일 때에 고민이 많았다. 고민의 가장 큰 이유는 착용감이었다. 파네라이는 기본적으로 44mm의 사이즈에, 두께도 15mm로 손목 위에 올려놓았을 때 존재감과 압박감이 상당했다. 게다가 파네라이의 상징인 크라운 가드(용두를 잠그는 뽈록이) 덕분에 무심코 손목을 젖히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죽시계이긴 하지만 무겁기는 또 어찌나 무거운지, 아무튼 착용감으로 치면 손목둘레 20cm 이상의 서양 형님들이 차지 않는 한 거의 빵점에 가까웠다. 기백만원 짜리 시계를 사놓고 착용감이 구려 차는 날이 줄어드니 순서는 뻔했다. 방출이었다.

 

이 정도 손목이면 거의 카시오지 뭐

 

6. 파네라이를 보내고 한동안 시계질에 회의감을 느껴(시계 덕후들이라면 으레 겪기 마련인 감기같은 증상이랄까) 손석희 시계로 유명한 카시오의 전자시계를 차고 다녔었다. 만족감이 무척 높았던 시계로 기억한다. 이만원 남짓의 가격에 어랍쇼? 기계식 시계로 치자면 데이데이트에, 크로노, GMT, 미닛 리피터에...알람까지? 게다가 작고 가볍고 얇에서 착용감도 좋아? 이 기능을 기계식 시계로 구현하려면 가만있어보자... 알람이 붙었단 말이지... 3,000만원으로 되려나... 역시 기계식 시계는 다 허영과 허상이었어... 그래 이제 나도 된장남 인증 시계의 세계에서 벗어나 검소하고 소박하며 합리적인 삶을 살거야... 이 카시오는 속세 탈출의 상징이다! 가만, 혹시 이거 단종될 수도 있으니 한 20개 사놓고 죽을 때 까지 이것만 찰까? 아 배터리... 그래 혹시 단종되더라도 어련히 비슷한 시계가 나올거야... 그나저나 이 좋은 시계를 두고 여지껏 어떻게 백만원이 넘는 시계를 사왔담... 쟤 좀 봐 쟤... 오메가 씨마스터잖아? 어휴 저 가련한 중생같으니... 저거 하나 살 돈이면 이거 150개는 살 수 있겠다... 등등 23,000원으로 해탈하여 평화롭게 살던 어느날, 며칠 째 늦은 밤까지 야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남들이 알아봐주는 고급 시계 하나 없이 카시오 걸치고 정신승리하는게... 맞는 건가? 

 

하는, 판피린 뺨 칠 만한 마법의 문장을 떠올렸고, 끊었던 시계 중고장터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찾은 시계는 아이러니하게도 파네라이였다. 

 

카시오...야근...왜...롤렉스...나는...응...?

 

7. 시계질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취미이기 때문에, 들인 돈 만큼 누군가 알아봐줬으면 하는 것이 참 간사하면서도 당연한 사람의 마음이다. 누가 보아도 알아보는 시계 브랜드는 다음과 같다. 1. 로렉스 2. 까르띠에 3. 오메가 4. 태그호이어 / 이외의 브랜드는, "어? 시계 예쁘다~ 어디꺼야?" 와 "시계 샀네?" 정도로 반응이 나뉜다. "시계 샀네?" 정도의 반응에서 끝난다면, 그 순간부터 왠지 정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결국 방출되게 마련이고, 이런 아픔을 두어 번 겪다 보면 결국 메이져 브랜드의 시계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나는 유명 브랜드보다는 "어? 시계 예쁘다~ 어디꺼야?"를 선택하기로 했고, 그 반응을 가장 많이 이끌어낸 승자는 다름아닌 파네라이였었다. 혓바닥이 좀 길었나? 결론만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보기에 예쁘고 남들이 봐도 예쁘다더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냥... 외모지상주의지 뭐...

 

맛있대

8. 그래서 내가 지금은 파네라이와 함께 해피한 삶을 살고 있는가? 라고 물어본다면, 글쎄... 착용감은 여전히 구리고, 요즘은 애플워치에 밀려 손목에 얹히는 날이 그리 많지도 않다. 그러다가도 가끔 한 번씩 차고 나가면 또 예쁘고, 예쁘다는 소리도 듣고 한다. 그럴 때면 또 구린 착용감이 용서가 된다. 그러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파네라이가 머리를 참 잘 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예쁘면 장땡이라는 법칙을 얘들은 잘도 써먹고 있다. 얍삽한 놈들이다.

2019년 10월 10일 발행 by Cheolso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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